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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3:16

미향마을 행사 후기 지난 행사2009.11.29 23:16

여름 밤에 울려퍼진 아름다운 향기 (1)

 


안 종 수

내가 미향마을을 알게 된 것이 아마 5월 단오때 중랑천 행사를 마치고 작은 문화 터를 만드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면서  미향마을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다.  삼각산이라는 큰 산을 끼고 있으면서 높지만 구릉위에 많지 않은 작고 허름한 가옥들이 전혀 흉물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삶의 여유로움과 도심에서 잊혀져가는 인간의 정을 물씬 풍기는, 말로만 듣던 미향마을을 처음 방문한 후 받은 감동은 작은 설렘이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꿈꿔왔던 문화적 공간의 실현 가능성으로서 꿈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작지만 소담스럽게 자연과 함께하면서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단위 아파트촌까지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는 공간으로 작은 열린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장소였다. 마을을 지키기 위한 기간의 과정들을 마을 분들에게 들으면서 단순한 문화적 행사가 아닌 문화 공간 운동으로 마을을 지켜내면서 행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생각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것은 無에서 有를 만드는 작업이며 또한 마을의 존재가치를 떠나서 주위 분들에게 왜 이러한 마을이 중요하고 지켜내야 하는지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하여 인식시켜야 하는 부분이기에 그저 단순한 문화행사 한 번 치루자는 그런 행사는 아니었다.  또한 이번 행사를 통하여 마을 사람들이 오래 동안 살아왔기에 주장하는 기득권과 이권타산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의 인정과 예술적이고 생태적 공간으로서 타자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으로 함께 지켜낼 수 있는, 많은 이들에게도 함께 나눔과 상생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평화박물관에서 에스페란토 평화연대 토론회 때 마침 우토르 마을 사진전이 있었는데 어쩌면 국가는 다를 지라도 마을 지켜내겠다는 마을 분들의 생각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토르 마을은 식민지 시절 일본 국가에 의해 끌려가 강제노역에 희생하신 분들이 만든 마을이다.  지금은 2.3세대까지 살고 있지만 전 후 60년 넘게 일본은 마을 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버렸다. 도심의 빈민가가 되어버린 마을을 일본 정부는 개발이라는 논리로 마을을 없애 버리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일본 사회문제로 확대되자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게 55억에 팔겠다고 했지만 한국정부는 이 문제가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까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마을을 살리겠다고 한국의 뜻있는 문화인들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 행사와 같은 날 ‘우토르 살리기 희망콘서트’가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라는’ 부제로 같은 날에 행사를 하고 있기에 어쩌면 국경을 달리하지만 마을을 지키고 살리겠다는 생각은 우토르나 미향마을 이나 같다고 할 것이다. 


자기가 평생을 살았던 집, 마을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어떠한 논리로라도 그 곳에 꿈과 추억을 가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이전에 살았던 시흥이라는 집과 마을에 대한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만 그 곳은 이미 십여 년 전에 도로가 나있어 살던 집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또한 초등학교 이 후 고등학교까지 상도동에서 살았는데 그곳 역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기에 어릴 적 뛰어놀던 추억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것 같다. 서울에 살면서 이사 안가고 온전히 40-50년을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거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 이사를 가면서 추억을 까먹고 살아야하는 거대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지우개 도시에 사는 서울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아니 자신들의 추억들을 간직한 마을이라는 기억들이 얼마나 있을까?   몇 십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간 마을에 자신이 살던 동네와 집이 그대로 나아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과거의 추억들이 하나 둘 머릿속 에서 튀어 나오면서 당시 함께 놀던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저 쪽 골목에서 뛰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개발이라는 논리로 너무나 많은 추억의 소중함 들을 함께 묻어 왔는지 모른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사 공연자들 역시 미향마을을 사전에 와 보고 행사에 대한 의의를 다지기 시작하면서 예산 0원 (한푼없이)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가야 했다.  준비팀에서 작은 역할분담이 느슨하게 만들어지고 조은(전쟁없는 세상)이 웹자보를 만들고 단체에게 알리기,   홍보는 행사에 대한 홍보도 있지만  이번 행사를 통하여 미향마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첫째의 목적이었다.


미술인회의와 문화연대 실무자들도 장소를 와 보면서 관심을 보였지만 당시 FTA 문제로 항창 바쁜 시기였기에 행사 이후의 결합을 고민하기로 했다.  문화, 평화, 환경단체를 위주로 홍보를 하고  꼬미(꿈찾기)의 솟대 제작과 이어 행사 전달 장승, 솟대 세우기가 순조롭게 진행 되면서 행사는 시작되었다.


  행사는 길놀이 판굿, 소지올리기, 인사말에 이어 퓨전댄스, 난타, 어린이 풍장놀이, 사물놀이 시조, 기악합주, 가야금독주, 판소리와 민요, 주민 장기자랑 순으로 무단히 진행 되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당시 길놀이가 시작되고 한참 판이 달아  올랐는데 갑자기 억수 같은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행사장 마을 마당이 비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의 혼란과  뒤이어 비를 피해 숨어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회자의 비속의 멘트가 이어지면서, 약 한 시간 정도 되었을까? 공연자체가 불가능한 와중에 비가 감쪽같이 멈추어 주었다.  우리는 끝까지 남아있는 분들을 위해 판을 정리하고 행사를 계속했다. 전력문제, 비로 인해 조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나 멋있고 헌신적인 춤판을 벌여주신 퓨전댄스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이 번 행사를 위해 열심히 연습 해 멋있는 팀웍을 보여주신 성북전동차 풍물패 ‘땅울림’과 회기동 풍물패 ‘신명누리’, 언제나 귀염둥이인 희망세상 ‘어린이 풍물패’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하신 짓패. 희망세상의 회원 여러분이 있었기에 이 번 행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8/5일 미향마을 행사 사진을  더 많이 보고 싶은 분은 파워포인트를 되어 있으니 위를 누르신 후 열기나 저장하여 본인 컴퓨터로 보시면 됩니다.>

배나무가 주렁주렁
                                          곳곳에 심어져있는 과일수들 - 배가 주렁주렁
태평무
정가악회분들
마을정경


조기선님의 판소리

길놀이
양인영님

Posted by 희망천사
2009.11.29 23:12

중랑천 생태체험 사진 지난 행사2009.11.29 23:12

지난 사진인데 아직 컴퓨터에 남아 있어 올립니다.  
중랑천 생태체험을 가서  수질검사도 하고 중랑천에 자라는 식물들과 꽃들을
관찰 하였습니다.   공간에서 풍물만 배우다가 가깝게 있는 중랑천이 아이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소중한 곳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함께 한 봉사자 선생님들도
즐거웠습니다.  희망세상 아이들은 어디를 내놔도 노는데는 지침이 없습니다.
뭘 놀까 모이중
실뜨기를 하는가
단체사진 한방
단체사진 2방
개구장이1
중랑천 수질검사 중
설명이 어려워
중랑천에 와서도 공부해야 되나
물뜨는 태연이
강의 중
이게 무슨 풀 이레요
맛난 식사..
이건 뭐래요
순애선생님 저요!
우리 전부요


Posted by 희망천사
지난 행사 2006/10/09 14:35
 지난 9월 10일 행사 였는데 사진을 늦게 올립니다.
8월에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를"이라는 행사를 너무나 잘 치러내고
9월에 마을 담장을 예쁘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작게 시작한
행사가 알차게 진행 되었습니다.

Posted by 희망천사
2009.11.29 23:06

지난 행사 사진과 글 지난 행사2009.11.29 23:06

희망천사들이 진짜 천사들이 사는 집을 방문했네요

지난 행사 2006/09/26 16:55
 
   지난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희망세상 식구들은  작은 정성을 모은 돈으로 삼겹살,포도, 배, 바나나 등을 가지고 은평구에 위치한 선덕원을 방문하였다.   그동안 주로  희망세상 봉사 공연이 양로원, 장애시설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공연이었는데  선덕원의 경우 50여명의 인원이 유치원 부터 중등학교 저학년의 여학생들 이었다.   너무나 맑은 눈망을 가진 이 아이들에게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악, 가요가 아닌 생소한 국악 공연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지고 이질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운동장 같은 마당에서 부터 희망세상 식구들을 에워싸며 궁금증 어린 질문을 퍼부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 무엇하는 것이예요?"    이렇게 시작한 공연은
처음부터 진지한 관찰과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는 반응 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판소리나 민요는 너무나 멀리가 있는지 모른다.  다행이 초등학교 음악책에 수록된 도라지, 군밤타령, 아리랑 등이 있어  함께 신이나서 따라 부르지만  아직까지 귀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것은 난타였다.  미리 나눠준 페트병과 소고를 함께 치면서
타악의 리듬을 흥겨워 했다. 

희망세상의 자선봉사 공연이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것은 본인들의 삶도 힘들지만 그 보다는 주위에 자신 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나마 나눠주고 싶은 마음과 아울러 우리의 손짓, 발짓, 몸짓으로 희망을 건네주소 싶은 "희망천사"의 분들이 단체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이러한 "희망천사"의 분들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가  이런 분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 뿐이다.   희망세상에서 우리 것을 배우며 그것을 가지고 또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 분들 이야 말고 진정으로 " 참피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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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정말 천사의 합창을 들었어요


 
Posted by 희망천사
2009.11.29 23:02

지난 사진들 지난 행사2009.11.29 23:02


2004년 중국 북경 공연을 위해
팜플렛 사진용으로 찍은 것 입니다,
다행히 싸이에 사진이 남아있어 공연사진과 퍼왔습니다.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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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희망천사

작은 민속터 만들기와 단오맞이 행사(중랑천)

지난 행사 2006/06/01 13:57

5/20- 21일 중랑천 장안교 부근에서 작은 민속터 만들기를 하고
2틀에 걸쳐 하루 4시간씩 공연 프로를 잡아서 작은 문화제를 올렸다.
공연에 참가한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을 구경하는 분들 보다  더 좋아하면서
색다른 공연이었다고 한다.


 

누르면 크게 됨


Posted by 희망천사
2008.05.10 01:00

2008 상반기 행사사진 슬라이드 지난 행사2008.05.10 01:00


Posted by 희망천사
2008.05.10 00:54

2008 상반기 행사사진들(1) 지난 행사2008.05.1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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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희망천사


"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최후의 3家口"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서울 하늘아래 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서울시 강북구 미아1동 일대, 과거 개발시대 서울로 상경한 빈민층이 산 중턱까지 올라가 주거촌을 형성한 달동네가 바로 현재의 ‘미향마을’이다. 1990년대 초,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제외되고 공원녹지로 지정돼 평당 1백8만원의 보상금으로 40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향마을 주거권 위원회의 장정숙(여, 61) 총무는 함께 마을을 둘러보며 “지난 7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 거린다”고 말했다.

과거 60여세대의 달동네가 7년 사이 10여 채의 가옥만 덩그러니 남은 채 고작 3세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엄연히 집과 땅의 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에서 판자촌 달동네는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인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주민들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종점을 향하다보면 점점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지대(地帶)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 버스의 종점은 바로 서울시 성북구 미아1동 산 108번지의 ‘미향마을’이다. 미향마을은 과거 판잣집 60여 호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모습이었지만, 고층 아파트 숲 뒤로 덩그러니 10여 호만 외로이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층 아파트와 미향마을의 어색한 공존은 이 일대 분위기를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을 뒤쪽 산자락과 조화를 이룬 미향마을은 이내 아담하고도 고즈넉한 정취를 내뿜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섬

1990년대 초 재개발을 시작으로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됐고, 게다가 지난 2003년에는 공원녹지로 지정되면서 강제 철거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오랜 싸움으로 지난해 6월 ‘공원녹지지정 철회’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서 어렵게 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다.

장정숙 총무는 “사람들이 이곳 미향마을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측면과 구청의 지속적인 독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1년 8월 건설부가 구도시계획법에 따라 종로, 성북, 은평, 서대문, 도봉구에 걸쳐 ‘북한산도시자연공원’ 설치키로 하고, 1977년 7월 공원 위치를 지축, 효자, 우이, 수유, 미아로 결정했다. 1994년 4월 서울시가 공원조성을 결정했고 1997년 미아 1-2지구 주택재개발 시행이 확정됐다.

장 총무는 “재개발동의서 인감증명을 재차 제출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당시 재개발 사업기본계획 단계에서 편입됐던 산 108번지 일대(미향마을)가 중간 과정에서 제외됐다”며 “구청과 조합 측에 재개발 사업에 편입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사업지연과 수익성 저하 등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향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주거보전 대책위는 당시 서울 시장(고건)을 만나 재개발 편입을 요구했고 조합 측과의 조정 끝에 108번지를 재개발에서 제외하는 대신 거주 의지가 있는 주민(건축주)은 그대로 마을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2003년 7월 강북구청은 공원조성을 위해 미향마을 강제 철거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 강제 철거를 몸으로 막아 부상을 당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어 주민들은 2005년 4월 공원조성사업 무효요구를 골자로 행정심판을 냈지만 기각됐다.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장 총무는 “지난 83년 공원부지 지정이후 18년간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지난 2001년 4월 공원 건설이 확정되었으니 주민들에게 나가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그 당시 행정관청에서 제시한 보상액은 평당 토지매입비 1백8만원, 가옥의 실질 보상금액은 4백만원에서 1천여만원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용료 1억을 내라?

그 뒤 주민들은 구의원, 동장, 통장까지 만나가면서 마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달동네의 허름한 노후가옥인 미향마을의 집들은 최소한의 개·보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난해 2월에는 강북구청에 개·보수 허가 민원을 제출했지만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구청 담당 공무원은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집을 비워라. 그렇지 않으면 입주권도 없고 불이 나던 자연 소멸되던 집에 손대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건강상 위험이 노출돼 있는 환경이라고 호소를 해도 “위험하면 마을회관에서 모여 살아라”며 맞수를 두는 공무원들이 너무나 야속하기만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날짜를 계산해 사용료를 물리겠다고 엄포했다는 것이다. 집이 초등학생 아들 명의로 돼 있는 황○○씨의 경우, 몇십년 동안의 땅 사용료로 8천만원을 지급하라며 목을 조아 왔다. 또 사용료를 내지 않을 경우 2천만원의 벌금이 주어진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민들은 이제껏 살던 집을 비우는 대신 손에 쥐어지는 아파트 입주권이 자신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종이 딱지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어려운 형편에 분양금을 납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장 총무는 “이런 입주권은 1천 개를 줘도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노후 건물 위험…“공무원, 마을회관에 모여 살아라”

지난해 7월에는 주민 3명이 재작년 6월 강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도시계획시설실시계획인가무효확인’ 행정소송이 승소해, 강북구청에서는 도시계획시설 사업변경인가와 관련된 결정도면을 정정 고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공원 조성은 계속 추진 중인 사업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에 불응하자 공탁으로 맞섰다.

지난해 8월 미향마을 주민들은 서울문화재단체협의회와 문화예술단체, 민노당 강북구위 등의 협조를 얻어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를’이라는 행사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미향마을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물론 뜻있는 외부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미향 생태마을 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주거권 확보와 생태마을 조성이 주민들의 기본입장임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켰다. 향후 추진위는 108번지 일대가 재개발에서 제외된 경위를 비롯해, 행정소송 패소에도 불구하고 강북구청이 추진 중인 북한산도시자연공원조성계획의 절차적 결함 등 문제점을 놓고 다각적인 연구와 활동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평생을 담아온 마을

현재 미향마을은 실질적으로 장 총무를 포함해 3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1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어도 나머지는 모두 빈집일 뿐이다. 한 때 62가구가 살았지만 재개발 제외, 공원조성 강제철거 등을 겪으면서 한 두 가구씩 빠져나가다 보니 현재에 이르렀다.

40년을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장 총무는 18살 때 강원도 고향에서 상경해 미향마을에 둥지를 틀게 됐다. 장 총무는 고향에 있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차비도 없이 고향 사람이 오는 길에 따라와 서울을 헤매는데 이 동네가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당연히 없었고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동대문 등 여타 빈촌(貧村)을 다 찾아봐도 이곳이 제일 지저분하고 환경이 열악했다. 환경이 안 좋으니 당연히 집값도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었다. 사글세부터 시작해 전세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집을 사게 됐다. 이후 부지도 사게 됐고 현재 보존등기도 돼 있다.

마지막 남은 판자촌 3家 “집 못 빼”
구청 공무원 “사용료 1억 내놔라!”

남편은 건설 중장비 기사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고, 휴가비도 아끼느라 5년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향마을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제각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장 총무는 설명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정계순(가명) 할머니 내외. 가축들의 폐사로 형편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와 방 한 칸짜리 사글세 생활을 시작했다. 집터를 닦고, 달러 빚을 내서 조금씩 집을 지어갔다. 땅을 사지 않으면 집을 헐어버린다는 말을 듣고는 뒤늦게 어려운 형편에 허겁지겁 부지도 매입했다.

남들은 평생의 판잣집 생활을 두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5남매를 낳고 키우며 50여년을 살아온 이곳 미향마을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곳이 현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깨끗하게 변모했다. 이는 동네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미향마을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미화에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강북구 솔샘의 원천이 되는 계곡물에 악취가 뒤섞인 썩은 물이 내려와 미향마을 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향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겨울 조사에 착수해 군부대에서 오수를 여과 없이 흘려보내 발생한 사건임을 확인했다. 이에 미향마을 주민들은 바로 구청에 신고해 시정될 수 있도록 민원을 제기했다.

정 할머니는 “봄이면 계곡에 올챙이가 자글자글하다. 어려운 시절 올라와 자식 낳고 기르면서 평생을 살아온 고향과도 같은 생활 터전이다. 지금은 어떤 보상금보다 여기서 남은 생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하다”며 미향마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kimmi777188@naver.com

 
2007/06/01 [19:38] ⓒ브레이크뉴스
Posted by 희망천사
2008.03.06 02:06

fotoj 1 지난 행사2008.03.06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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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희망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