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최후의 3家口" |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
서울 하늘아래 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서울시 강북구 미아1동 일대, 과거 개발시대 서울로 상경한 빈민층이 산 중턱까지 올라가 주거촌을 형성한 달동네가 바로 현재의 ‘미향마을’이다. 1990년대 초,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제외되고 공원녹지로 지정돼 평당 1백8만원의 보상금으로 40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향마을 주거권 위원회의 장정숙(여, 61) 총무는 함께 마을을 둘러보며 “지난 7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 거린다”고 말했다. 과거 60여세대의 달동네가 7년 사이 10여 채의 가옥만 덩그러니 남은 채 고작 3세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엄연히 집과 땅의 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에서 판자촌 달동네는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인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주민들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종점을 향하다보면 점점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지대(地帶)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 버스의 종점은 바로 서울시 성북구 미아1동 산 108번지의 ‘미향마을’이다. 미향마을은 과거 판잣집 60여 호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모습이었지만, 고층 아파트 숲 뒤로 덩그러니 10여 호만 외로이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층 아파트와 미향마을의 어색한 공존은 이 일대 분위기를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을 뒤쪽 산자락과 조화를 이룬 미향마을은 이내 아담하고도 고즈넉한 정취를 내뿜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섬 1990년대 초 재개발을 시작으로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됐고, 게다가 지난 2003년에는 공원녹지로 지정되면서 강제 철거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오랜 싸움으로 지난해 6월 ‘공원녹지지정 철회’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서 어렵게 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다. 장정숙 총무는 “사람들이 이곳 미향마을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측면과 구청의 지속적인 독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1년 8월 건설부가 구도시계획법에 따라 종로, 성북, 은평, 서대문, 도봉구에 걸쳐 ‘북한산도시자연공원’ 설치키로 하고, 1977년 7월 공원 위치를 지축, 효자, 우이, 수유, 미아로 결정했다. 1994년 4월 서울시가 공원조성을 결정했고 1997년 미아 1-2지구 주택재개발 시행이 확정됐다. 장 총무는 “재개발동의서 인감증명을 재차 제출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당시 재개발 사업기본계획 단계에서 편입됐던 산 108번지 일대(미향마을)가 중간 과정에서 제외됐다”며 “구청과 조합 측에 재개발 사업에 편입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사업지연과 수익성 저하 등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향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주거보전 대책위는 당시 서울 시장(고건)을 만나 재개발 편입을 요구했고 조합 측과의 조정 끝에 108번지를 재개발에서 제외하는 대신 거주 의지가 있는 주민(건축주)은 그대로 마을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2003년 7월 강북구청은 공원조성을 위해 미향마을 강제 철거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 강제 철거를 몸으로 막아 부상을 당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어 주민들은 2005년 4월 공원조성사업 무효요구를 골자로 행정심판을 냈지만 기각됐다.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장 총무는 “지난 83년 공원부지 지정이후 18년간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지난 2001년 4월 공원 건설이 확정되었으니 주민들에게 나가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그 당시 행정관청에서 제시한 보상액은 평당 토지매입비 1백8만원, 가옥의 실질 보상금액은 4백만원에서 1천여만원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용료 1억을 내라? 그 뒤 주민들은 구의원, 동장, 통장까지 만나가면서 마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달동네의 허름한 노후가옥인 미향마을의 집들은 최소한의 개·보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난해 2월에는 강북구청에 개·보수 허가 민원을 제출했지만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구청 담당 공무원은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집을 비워라. 그렇지 않으면 입주권도 없고 불이 나던 자연 소멸되던 집에 손대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건강상 위험이 노출돼 있는 환경이라고 호소를 해도 “위험하면 마을회관에서 모여 살아라”며 맞수를 두는 공무원들이 너무나 야속하기만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날짜를 계산해 사용료를 물리겠다고 엄포했다는 것이다. 집이 초등학생 아들 명의로 돼 있는 황○○씨의 경우, 몇십년 동안의 땅 사용료로 8천만원을 지급하라며 목을 조아 왔다. 또 사용료를 내지 않을 경우 2천만원의 벌금이 주어진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민들은 이제껏 살던 집을 비우는 대신 손에 쥐어지는 아파트 입주권이 자신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종이 딱지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어려운 형편에 분양금을 납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장 총무는 “이런 입주권은 1천 개를 줘도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노후 건물 위험…“공무원, 마을회관에 모여 살아라” 지난해 7월에는 주민 3명이 재작년 6월 강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도시계획시설실시계획인가무효확인’ 행정소송이 승소해, 강북구청에서는 도시계획시설 사업변경인가와 관련된 결정도면을 정정 고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공원 조성은 계속 추진 중인 사업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에 불응하자 공탁으로 맞섰다. 지난해 8월 미향마을 주민들은 서울문화재단체협의회와 문화예술단체, 민노당 강북구위 등의 협조를 얻어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를’이라는 행사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미향마을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물론 뜻있는 외부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미향 생태마을 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주거권 확보와 생태마을 조성이 주민들의 기본입장임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켰다. 향후 추진위는 108번지 일대가 재개발에서 제외된 경위를 비롯해, 행정소송 패소에도 불구하고 강북구청이 추진 중인 북한산도시자연공원조성계획의 절차적 결함 등 문제점을 놓고 다각적인 연구와 활동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평생을 담아온 마을 현재 미향마을은 실질적으로 장 총무를 포함해 3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1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어도 나머지는 모두 빈집일 뿐이다. 한 때 62가구가 살았지만 재개발 제외, 공원조성 강제철거 등을 겪으면서 한 두 가구씩 빠져나가다 보니 현재에 이르렀다. 40년을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장 총무는 18살 때 강원도 고향에서 상경해 미향마을에 둥지를 틀게 됐다. 장 총무는 고향에 있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차비도 없이 고향 사람이 오는 길에 따라와 서울을 헤매는데 이 동네가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당연히 없었고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동대문 등 여타 빈촌(貧村)을 다 찾아봐도 이곳이 제일 지저분하고 환경이 열악했다. 환경이 안 좋으니 당연히 집값도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었다. 사글세부터 시작해 전세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집을 사게 됐다. 이후 부지도 사게 됐고 현재 보존등기도 돼 있다. 마지막 남은 판자촌 3家 “집 못 빼” 남편은 건설 중장비 기사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고, 휴가비도 아끼느라 5년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향마을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제각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장 총무는 설명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정계순(가명) 할머니 내외. 가축들의 폐사로 형편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와 방 한 칸짜리 사글세 생활을 시작했다. 집터를 닦고, 달러 빚을 내서 조금씩 집을 지어갔다. 땅을 사지 않으면 집을 헐어버린다는 말을 듣고는 뒤늦게 어려운 형편에 허겁지겁 부지도 매입했다. 남들은 평생의 판잣집 생활을 두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5남매를 낳고 키우며 50여년을 살아온 이곳 미향마을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곳이 현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깨끗하게 변모했다. 이는 동네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미향마을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미화에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강북구 솔샘의 원천이 되는 계곡물에 악취가 뒤섞인 썩은 물이 내려와 미향마을 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향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겨울 조사에 착수해 군부대에서 오수를 여과 없이 흘려보내 발생한 사건임을 확인했다. 이에 미향마을 주민들은 바로 구청에 신고해 시정될 수 있도록 민원을 제기했다. 정 할머니는 “봄이면 계곡에 올챙이가 자글자글하다. 어려운 시절 올라와 자식 낳고 기르면서 평생을 살아온 고향과도 같은 생활 터전이다. 지금은 어떤 보상금보다 여기서 남은 생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하다”며 미향마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
2007/06/01 [19:38] ⓒ브레이크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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