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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세상 소개

오마이 뉴스에 난 희망세상

할머니들의 함박웃음을 만들어낸 풍물잔치
[동행기] 희망만들기, 10년째 희망세상의 양로원 공연봉사
텍스트만보기 김영조(sol119) 기자   
▲ 청운양로원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 1
ⓒ2005 김영조
가을이 그윽해진 일요일(6일) 오후 우린 노오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서울 동대문구의 회기로를 차를 타고 지나며, 잠시 할 일을 잊는다. 세상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노랗게 물든 저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모습을 상상한다. '봄 여자는 생각하고, 가을 남자는 슬퍼한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가을, 여긴 분명 가을이었다.

그런데 이 노란 세상은 종로구 청운양로원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세상으로 바뀐다. 온통 여기저기 붉은 단풍은 불붙고 있다. 그 누구의 일편단심이던가? 아마 오늘 청운양로원의 할머니들을 위해 10년을 한결같이 위문공연을 한 희망세상의 마음은 아닐까?

짓패 '희망세상'은 무엇인가? 그들은 1988년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해 태어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전통문화단체이다. 초대 안종수 대표에 이어 지금 4대 대표는 고경자(45)씨가 맡아서 운영한다. 그동안 그들은 문화운동, 전통문화교육, 전통문화를 통한 각종 봉사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희망세상은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위한 잔치인 '오뚜기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장애인 영화제 개막식 초청공연, 일본 히다카 고등학교 초청공연, 재일교포 위문공연, 베이징 컨벤션센터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초청공연, 단둥, 연변 초청공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서울 평창동의 청운양로원과 성남의 자광원(무의탁 노인시설)을 10년째 꾸준히 방문하고 있어 큰 박수를 받고 있다. 그것도 조용히 숨어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더 큰 칭찬을 받는 것이다.

할머니들에게는 바깥 날씨가 약간 쌀쌀했지만, 맨 먼저 마당에서 질펀한 풍물굿 한판을 펼치는 희망세상의 어른풍물패와 어린이풍물패 그리고 땅울림 사람들이 한데 어울린 열기는 불타는 단풍과 함께 온 세상을 불태우고 남음이 있었다. 한편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할머니들은 흥과 함께 손뼉을 치기에 여념이 없다.

▲ 공연 중 봉산탈춤의 양반춤과장 장면
ⓒ2005 김영조

▲ (위)애기풍장 공연 모습, (아래)땅울림 공연 모습
ⓒ2005 김영조
한바탕 땅을 울렸던 풍물소리를 뒤로하고, 모두 양로원 안의 강당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할머니들을 즐겁게 할 공연들이 사회자 이종문(57·서울 성북전동차사무소 운용팀장)씨의 진행으로 펼쳐진다. 먼저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하는 따뜻한 비나리를 바친다. 비나리가 끝나자 사회자는 "비나리를 했으니 이제 내년 이때 다시 뵐 때까지 할머니들께 건강과 행복만 있을 것입니다"라는 축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봉산탈춤 중 양반춤과장이 벌어지는데 우아하면서고 익살스럽고, 그런가 하면 박력 있는 춤사위로 구경꾼들을 사로잡는다. 또 이날 인기를 독차지한 애기풍장이 시작된다. 3달에서 1년을 배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고사리손은 할머니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한다. 애기풍장을 보던 모두는 아이들의 기량에 혀를 내두른다.

다음은 특별출연으로 서울 신촌 '소리터' 사람들의 소리공연이 이어졌다. <사철가> <사랑가>와 함께 들려 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소리는 구경꾼들의 합창을 끌어낸다. 주최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부부가 같이 한 것에 모두 힘껏 손뼉으로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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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터'의 공연 모습
ⓒ2005 김영조
이어진 서울 성북전동차사무소 풍물패 '땅울림'은 이름 그대로 박력 있는 땅울림의 한판을 펼쳤다.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가능한 사물놀이 공연은 온몸으로 할머니들의 힘을 돋운다.

땅울림은 10년을 희망세상의 이 공연봉사에 함께 해왔다고 한다. 이 풍물패의 호순복(52) 회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모두 전동차 기관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10년 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하여 희망세상의 대표님에게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고, 일에 지친 사람들은 문화를 접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과 풍물로 함께 하는 특히 오늘처럼 저희의 적은 노력으로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가슴 뿌듯합니다."

땅울림의 박력 있는 공연 뒤에 고경자 대표와 2명의 문하생이 함께 하는 난타공연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이 색다르고 화려한 공연에 넋이 나간 듯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두 어린이의 깜짝 공연, 태권도 시범에 강당은 온통 난리법석이다. 깜찍한 아이들의 박진감 있는 동작에 할머니들의 감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공연자들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줄 때 강당 안은 따뜻함이 넘쳐 흘렀다. 공연자들이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라고 당부하자 할머니들은 언제 또 올 거냐며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은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청운양로원 조동순 원장(70)은 공연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고경자 대표 외 2인의 난타공연(위)과 마당에서의 풍물 한바탕
ⓒ2005 김영조
▲ (위)할머니들과 한바탕 어울려 춤을 추는 공연단, (아래)할머니들과 따뜻하게 헤어짐의 손을 잡는 공연단들
ⓒ2005 김영조
"벌써 10년을 한결같이 할머니들을 위해 걸음을 해준 분들께 너무나 고맙습니다. 무료하게 지내시는 할머니들께 이런 것을 보여드리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다녀가고 나면 할머니들은 또 기다리십니다."

청운양로원은 양로원에 60분, 요양원에 50분 모두 110분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따뜻하게 보살펴주기에 이곳은 인기 있는 양로원으로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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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운양로원 조동순 원장
ⓒ2005 김영조
이날 나는 불타는 단풍과 함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는 따뜻한 사람들과의 하루였음이 너무나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11월 7일은 24절기 중 '입동'이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이날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제 모두 잊어버린 이 풍습을 희망세상 그리고 같이 한 이들은 새롭게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추위는 가까이 온다. 그런데 이 쌀쌀한 늦가을 다리 위에 종이상자를 깐 다음 그 위에 초라한 이부자리를 놓고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까치밥'처럼 동물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었던 우리 겨레의 '더불어 살기' 정신이 사라진 걸까? 우리는 이제라도 희망세상의 희망만들기를 본받아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봉사가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인터뷰] 희망세상 고경자 대표

▲ <비나리>를 하는 고경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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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양로원 공연봉사를 하게 되었나?
"이 좋은 우리 문화를 우리만 즐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것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고, 가까이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할머니들과 함께 하려 했다. 이곳 청운양로원은 가깝기도 했지만 넓은 마당이 있어서 풍물굿과 탈춤을 공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995년 시작하여 처음엔 매해 1~2번 찾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한다."

- 양로원에서 흔쾌히 받아들기는 했나?
"처음엔 찬바람만 불었다. '성금만 보내면 되지 왜 시끄럽게 하느냐?'라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일회용으로 사진만 찍는 그런 행사가 아닌가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같이 즐기고,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란 설득을 해나가고, 해마다 가기를 반복한 끝에 몇 년 지나니 반겨주었다. 이제 할머니들이 안 오면 기다리고, 이제 가면 언제 오냐고 물으시곤 한다."

- 이런 행사를 진행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마련하나?
"물론 우리는 수익사업을 하지도 못하고, 정부의 보조금도 거의 없다. 그래서 재정이 열악한 상태이지만 10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이 일을 해왔다. 그것은 희망세상에서 배우고, 거친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자원봉사 사회자의 도움이 컸고, 어떤 분들은 차량으로 지원했으며, 공연을 하는 분들도 모두 무료로 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게다가 어떤 분들은 뒷풀이를 위한 10만 원어치의 삼겹살로, 4년 묶은 김치로, 50인분의 김밥, 유산균 음료를 댔다."

-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언젠가 한번은 멋진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와 한 남자회원이 한바탕 춤을 추었다. 둘은 손을 꼬옥 잡고, 또 만나 춤을 추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음에 찾아갔을 때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그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춤을 같이 춘 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린 한동안 그 할머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이 공연봉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나는 이것을 결코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한나절 할머니들과 한바탕 놀다 오는 것이어서 즐거움일 뿐이다.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을 봉사라고 하기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또 그로 인해 우리는 온갖 마음의 때를 씻고 오는 중요한 체험을 한다.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할머니들에게서 많은 것을 받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초대 대표를 지낸 안종수씨가 거든다.

"희망세상이 처음엔 주로 시민운동의 한 축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봉사활동과 더불어 지역운동도 할 계획이다. 그래서 '동대문 희망비전'을 만들었다. 옛날엔 홀로 했지만 이젠 지역의 다른 단체들과 함께하는 운동으로 갈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