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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행사 2006/10/09 14:35
 지난 9월 10일 행사 였는데 사진을 늦게 올립니다.
8월에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를"이라는 행사를 너무나 잘 치러내고
9월에 마을 담장을 예쁘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작게 시작한
행사가 알차게 진행 되었습니다.

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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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3:06

지난 행사 사진과 글 지난 행사2009.11.29 23:06

희망천사들이 진짜 천사들이 사는 집을 방문했네요

지난 행사 2006/09/26 16:55
 
   지난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희망세상 식구들은  작은 정성을 모은 돈으로 삼겹살,포도, 배, 바나나 등을 가지고 은평구에 위치한 선덕원을 방문하였다.   그동안 주로  희망세상 봉사 공연이 양로원, 장애시설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공연이었는데  선덕원의 경우 50여명의 인원이 유치원 부터 중등학교 저학년의 여학생들 이었다.   너무나 맑은 눈망을 가진 이 아이들에게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악, 가요가 아닌 생소한 국악 공연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지고 이질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운동장 같은 마당에서 부터 희망세상 식구들을 에워싸며 궁금증 어린 질문을 퍼부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 무엇하는 것이예요?"    이렇게 시작한 공연은
처음부터 진지한 관찰과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는 반응 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판소리나 민요는 너무나 멀리가 있는지 모른다.  다행이 초등학교 음악책에 수록된 도라지, 군밤타령, 아리랑 등이 있어  함께 신이나서 따라 부르지만  아직까지 귀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것은 난타였다.  미리 나눠준 페트병과 소고를 함께 치면서
타악의 리듬을 흥겨워 했다. 

희망세상의 자선봉사 공연이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것은 본인들의 삶도 힘들지만 그 보다는 주위에 자신 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나마 나눠주고 싶은 마음과 아울러 우리의 손짓, 발짓, 몸짓으로 희망을 건네주소 싶은 "희망천사"의 분들이 단체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이러한 "희망천사"의 분들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가  이런 분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 뿐이다.   희망세상에서 우리 것을 배우며 그것을 가지고 또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 분들 이야 말고 진정으로 " 참피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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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정말 천사의 합창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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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3:03

희망세상 소개 사진 희망세상 소개2009.11.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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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3:02

지난 사진들 지난 행사2009.11.29 23:02


2004년 중국 북경 공연을 위해
팜플렛 사진용으로 찍은 것 입니다,
다행히 싸이에 사진이 남아있어 공연사진과 퍼왔습니다.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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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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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민속터 만들기와 단오맞이 행사(중랑천)

지난 행사 2006/06/01 13:57

5/20- 21일 중랑천 장안교 부근에서 작은 민속터 만들기를 하고
2틀에 걸쳐 하루 4시간씩 공연 프로를 잡아서 작은 문화제를 올렸다.
공연에 참가한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을 구경하는 분들 보다  더 좋아하면서
색다른 공연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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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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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함박웃음을 만들어낸 풍물잔치
[동행기] 희망만들기, 10년째 희망세상의 양로원 공연봉사
텍스트만보기 김영조(sol119) 기자   
▲ 청운양로원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 1
ⓒ2005 김영조
가을이 그윽해진 일요일(6일) 오후 우린 노오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서울 동대문구의 회기로를 차를 타고 지나며, 잠시 할 일을 잊는다. 세상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노랗게 물든 저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모습을 상상한다. '봄 여자는 생각하고, 가을 남자는 슬퍼한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가을, 여긴 분명 가을이었다.

그런데 이 노란 세상은 종로구 청운양로원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세상으로 바뀐다. 온통 여기저기 붉은 단풍은 불붙고 있다. 그 누구의 일편단심이던가? 아마 오늘 청운양로원의 할머니들을 위해 10년을 한결같이 위문공연을 한 희망세상의 마음은 아닐까?

짓패 '희망세상'은 무엇인가? 그들은 1988년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해 태어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전통문화단체이다. 초대 안종수 대표에 이어 지금 4대 대표는 고경자(45)씨가 맡아서 운영한다. 그동안 그들은 문화운동, 전통문화교육, 전통문화를 통한 각종 봉사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희망세상은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위한 잔치인 '오뚜기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장애인 영화제 개막식 초청공연, 일본 히다카 고등학교 초청공연, 재일교포 위문공연, 베이징 컨벤션센터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초청공연, 단둥, 연변 초청공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서울 평창동의 청운양로원과 성남의 자광원(무의탁 노인시설)을 10년째 꾸준히 방문하고 있어 큰 박수를 받고 있다. 그것도 조용히 숨어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더 큰 칭찬을 받는 것이다.

할머니들에게는 바깥 날씨가 약간 쌀쌀했지만, 맨 먼저 마당에서 질펀한 풍물굿 한판을 펼치는 희망세상의 어른풍물패와 어린이풍물패 그리고 땅울림 사람들이 한데 어울린 열기는 불타는 단풍과 함께 온 세상을 불태우고 남음이 있었다. 한편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할머니들은 흥과 함께 손뼉을 치기에 여념이 없다.

▲ 공연 중 봉산탈춤의 양반춤과장 장면
ⓒ2005 김영조

▲ (위)애기풍장 공연 모습, (아래)땅울림 공연 모습
ⓒ2005 김영조
한바탕 땅을 울렸던 풍물소리를 뒤로하고, 모두 양로원 안의 강당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할머니들을 즐겁게 할 공연들이 사회자 이종문(57·서울 성북전동차사무소 운용팀장)씨의 진행으로 펼쳐진다. 먼저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하는 따뜻한 비나리를 바친다. 비나리가 끝나자 사회자는 "비나리를 했으니 이제 내년 이때 다시 뵐 때까지 할머니들께 건강과 행복만 있을 것입니다"라는 축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봉산탈춤 중 양반춤과장이 벌어지는데 우아하면서고 익살스럽고, 그런가 하면 박력 있는 춤사위로 구경꾼들을 사로잡는다. 또 이날 인기를 독차지한 애기풍장이 시작된다. 3달에서 1년을 배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고사리손은 할머니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한다. 애기풍장을 보던 모두는 아이들의 기량에 혀를 내두른다.

다음은 특별출연으로 서울 신촌 '소리터' 사람들의 소리공연이 이어졌다. <사철가> <사랑가>와 함께 들려 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소리는 구경꾼들의 합창을 끌어낸다. 주최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부부가 같이 한 것에 모두 힘껏 손뼉으로 반긴다.

/
▲ '소리터'의 공연 모습
ⓒ2005 김영조
이어진 서울 성북전동차사무소 풍물패 '땅울림'은 이름 그대로 박력 있는 땅울림의 한판을 펼쳤다.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가능한 사물놀이 공연은 온몸으로 할머니들의 힘을 돋운다.

땅울림은 10년을 희망세상의 이 공연봉사에 함께 해왔다고 한다. 이 풍물패의 호순복(52) 회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모두 전동차 기관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10년 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하여 희망세상의 대표님에게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고, 일에 지친 사람들은 문화를 접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과 풍물로 함께 하는 특히 오늘처럼 저희의 적은 노력으로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가슴 뿌듯합니다."

땅울림의 박력 있는 공연 뒤에 고경자 대표와 2명의 문하생이 함께 하는 난타공연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이 색다르고 화려한 공연에 넋이 나간 듯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두 어린이의 깜짝 공연, 태권도 시범에 강당은 온통 난리법석이다. 깜찍한 아이들의 박진감 있는 동작에 할머니들의 감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공연자들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줄 때 강당 안은 따뜻함이 넘쳐 흘렀다. 공연자들이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라고 당부하자 할머니들은 언제 또 올 거냐며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은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청운양로원 조동순 원장(70)은 공연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고경자 대표 외 2인의 난타공연(위)과 마당에서의 풍물 한바탕
ⓒ2005 김영조
▲ (위)할머니들과 한바탕 어울려 춤을 추는 공연단, (아래)할머니들과 따뜻하게 헤어짐의 손을 잡는 공연단들
ⓒ2005 김영조
"벌써 10년을 한결같이 할머니들을 위해 걸음을 해준 분들께 너무나 고맙습니다. 무료하게 지내시는 할머니들께 이런 것을 보여드리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다녀가고 나면 할머니들은 또 기다리십니다."

청운양로원은 양로원에 60분, 요양원에 50분 모두 110분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따뜻하게 보살펴주기에 이곳은 인기 있는 양로원으로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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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운양로원 조동순 원장
ⓒ2005 김영조
이날 나는 불타는 단풍과 함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는 따뜻한 사람들과의 하루였음이 너무나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11월 7일은 24절기 중 '입동'이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이날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제 모두 잊어버린 이 풍습을 희망세상 그리고 같이 한 이들은 새롭게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추위는 가까이 온다. 그런데 이 쌀쌀한 늦가을 다리 위에 종이상자를 깐 다음 그 위에 초라한 이부자리를 놓고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까치밥'처럼 동물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었던 우리 겨레의 '더불어 살기' 정신이 사라진 걸까? 우리는 이제라도 희망세상의 희망만들기를 본받아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봉사가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인터뷰] 희망세상 고경자 대표

▲ <비나리>를 하는 고경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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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양로원 공연봉사를 하게 되었나?
"이 좋은 우리 문화를 우리만 즐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것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고, 가까이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할머니들과 함께 하려 했다. 이곳 청운양로원은 가깝기도 했지만 넓은 마당이 있어서 풍물굿과 탈춤을 공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995년 시작하여 처음엔 매해 1~2번 찾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한다."

- 양로원에서 흔쾌히 받아들기는 했나?
"처음엔 찬바람만 불었다. '성금만 보내면 되지 왜 시끄럽게 하느냐?'라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일회용으로 사진만 찍는 그런 행사가 아닌가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같이 즐기고,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란 설득을 해나가고, 해마다 가기를 반복한 끝에 몇 년 지나니 반겨주었다. 이제 할머니들이 안 오면 기다리고, 이제 가면 언제 오냐고 물으시곤 한다."

- 이런 행사를 진행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마련하나?
"물론 우리는 수익사업을 하지도 못하고, 정부의 보조금도 거의 없다. 그래서 재정이 열악한 상태이지만 10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이 일을 해왔다. 그것은 희망세상에서 배우고, 거친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자원봉사 사회자의 도움이 컸고, 어떤 분들은 차량으로 지원했으며, 공연을 하는 분들도 모두 무료로 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게다가 어떤 분들은 뒷풀이를 위한 10만 원어치의 삼겹살로, 4년 묶은 김치로, 50인분의 김밥, 유산균 음료를 댔다."

-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언젠가 한번은 멋진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와 한 남자회원이 한바탕 춤을 추었다. 둘은 손을 꼬옥 잡고, 또 만나 춤을 추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음에 찾아갔을 때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그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춤을 같이 춘 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린 한동안 그 할머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이 공연봉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
"나는 이것을 결코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한나절 할머니들과 한바탕 놀다 오는 것이어서 즐거움일 뿐이다.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을 봉사라고 하기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또 그로 인해 우리는 온갖 마음의 때를 씻고 오는 중요한 체험을 한다.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할머니들에게서 많은 것을 받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초대 대표를 지낸 안종수씨가 거든다.

"희망세상이 처음엔 주로 시민운동의 한 축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봉사활동과 더불어 지역운동도 할 계획이다. 그래서 '동대문 희망비전'을 만들었다. 옛날엔 홀로 했지만 이젠 지역의 다른 단체들과 함께하는 운동으로 갈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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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22:49

희망세상 소개 희망세상 소개2009.11.29 22:49


짓패? 희망세상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321-101   Tel. 02-965-9857


               

1988년 11월 황해도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문화단체로서 출발한 '굿패. 희망세상'은 1990년 7월 '짓패. 희망세상'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문화대중사업과 국악교육, 자선공연, 자체공연 , 어린이 무료 국악교실 등 지역주민을 위한 공연을 비롯해 전통문화 공연을 국,내외로 활발하게 하고 있는 단체로서 현재 (고경자 희망세상 대표) 매년 '어린이 겨울 전통 문화 캠프'와 각 초, 중, 고등학교 특기 적성 프로그램의 풍물 교육에 강사를 파견하여 우리 문화교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기획 공연 및 자선공연 (연 30회 정도)

1. 서울시민 문화 한마당(1999-현재)

2. 청운양로원 방문 자선공연(1997-현재)

3. 뇌성마비 장애인 오뚜기 축제 참가 공연(1998-현재)

4.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1996-현재)

5. 휠체어 장애인 사회적응 훈련 자선공연(2000-2003)

6. 무의탁 노인 위탁시설 성남 '자광원' 자선공연 (2001-2003)

7. 에스페란토 아시아대회 축하공연 (2002, 세종문화회관)

8. 장애인 영화체 개막 축하공연(2005)


  국악 교육 사업

1. 초, 중, 고등학교 교사 및 학생들을 위한 국악교육

(면목초등 교사팀, 봉화중 교사팀, 오봉초등 교사팀, 동대부고 교사팀 등)

2. 초, 중, 고등학교 국악 전일제 수업 및 특기적성 교육

(상경초등, 서울사대부여중, 온곡중, 노일중, 노원중, 숭인중, 상봉중, 성동여실고 등)

3. 우리문화 함께하는 어린이 겨울방학 전통문화 캠프(현 5회 진행중)

4. 방과 후 어린이를 위한 무료국악교실 운영 및 어린이 체험학습 진행

5. 동대문 청년회 풍물교육

6. 한국 철도공사 성북 지회 풍물패 '땅울림' 국악교육실시(1996-현재)


해외공연

1. 일본 쯔루가시 초청 '한국전통문화의 밤' 공연 (1990, 일본 쯔루가시)

2. 재독 한인회 초청 '노동절 기념공연' (1998, 독일 뒤셀도르프)

3. 일본 후쿠오카 한국문화의 집 1주년 기념공연 (2000, 후쿠오카)

4. 에스페란토 국제 청년대회 및 관광절 축하공연 (2003, 중국 단동, 연길 )

5.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공연(2004, 중국 베이징)

6. 일본 히다가 고등학교 초청 공연 및 동경 YMCA 공연 (2005. 12)

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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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0 01:00

2008 상반기 행사사진 슬라이드 지난 행사2008.05.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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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0 00:54

2008 상반기 행사사진들(1) 지난 행사2008.05.1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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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최후의 3家口"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서울 하늘아래 마지막 달동네 ‘미향마을’

서울시 강북구 미아1동 일대, 과거 개발시대 서울로 상경한 빈민층이 산 중턱까지 올라가 주거촌을 형성한 달동네가 바로 현재의 ‘미향마을’이다. 1990년대 초,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제외되고 공원녹지로 지정돼 평당 1백8만원의 보상금으로 40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향마을 주거권 위원회의 장정숙(여, 61) 총무는 함께 마을을 둘러보며 “지난 7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 거린다”고 말했다.

과거 60여세대의 달동네가 7년 사이 10여 채의 가옥만 덩그러니 남은 채 고작 3세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엄연히 집과 땅의 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에서 판자촌 달동네는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인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주민들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분양금 납부 엄두도 못내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종점을 향하다보면 점점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지대(地帶)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 버스의 종점은 바로 서울시 성북구 미아1동 산 108번지의 ‘미향마을’이다. 미향마을은 과거 판잣집 60여 호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모습이었지만, 고층 아파트 숲 뒤로 덩그러니 10여 호만 외로이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층 아파트와 미향마을의 어색한 공존은 이 일대 분위기를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을 뒤쪽 산자락과 조화를 이룬 미향마을은 이내 아담하고도 고즈넉한 정취를 내뿜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섬

1990년대 초 재개발을 시작으로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됐고, 게다가 지난 2003년에는 공원녹지로 지정되면서 강제 철거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오랜 싸움으로 지난해 6월 ‘공원녹지지정 철회’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서 어렵게 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다.

장정숙 총무는 “사람들이 이곳 미향마을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측면과 구청의 지속적인 독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1년 8월 건설부가 구도시계획법에 따라 종로, 성북, 은평, 서대문, 도봉구에 걸쳐 ‘북한산도시자연공원’ 설치키로 하고, 1977년 7월 공원 위치를 지축, 효자, 우이, 수유, 미아로 결정했다. 1994년 4월 서울시가 공원조성을 결정했고 1997년 미아 1-2지구 주택재개발 시행이 확정됐다.

장 총무는 “재개발동의서 인감증명을 재차 제출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당시 재개발 사업기본계획 단계에서 편입됐던 산 108번지 일대(미향마을)가 중간 과정에서 제외됐다”며 “구청과 조합 측에 재개발 사업에 편입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사업지연과 수익성 저하 등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향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주거보전 대책위는 당시 서울 시장(고건)을 만나 재개발 편입을 요구했고 조합 측과의 조정 끝에 108번지를 재개발에서 제외하는 대신 거주 의지가 있는 주민(건축주)은 그대로 마을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2003년 7월 강북구청은 공원조성을 위해 미향마을 강제 철거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 강제 철거를 몸으로 막아 부상을 당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어 주민들은 2005년 4월 공원조성사업 무효요구를 골자로 행정심판을 냈지만 기각됐다.

“입주권 1천 개 줘도 필요 없다”

장 총무는 “지난 83년 공원부지 지정이후 18년간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지난 2001년 4월 공원 건설이 확정되었으니 주민들에게 나가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그 당시 행정관청에서 제시한 보상액은 평당 토지매입비 1백8만원, 가옥의 실질 보상금액은 4백만원에서 1천여만원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용료 1억을 내라?

그 뒤 주민들은 구의원, 동장, 통장까지 만나가면서 마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달동네의 허름한 노후가옥인 미향마을의 집들은 최소한의 개·보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난해 2월에는 강북구청에 개·보수 허가 민원을 제출했지만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구청 담당 공무원은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집을 비워라. 그렇지 않으면 입주권도 없고 불이 나던 자연 소멸되던 집에 손대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건강상 위험이 노출돼 있는 환경이라고 호소를 해도 “위험하면 마을회관에서 모여 살아라”며 맞수를 두는 공무원들이 너무나 야속하기만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날짜를 계산해 사용료를 물리겠다고 엄포했다는 것이다. 집이 초등학생 아들 명의로 돼 있는 황○○씨의 경우, 몇십년 동안의 땅 사용료로 8천만원을 지급하라며 목을 조아 왔다. 또 사용료를 내지 않을 경우 2천만원의 벌금이 주어진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민들은 이제껏 살던 집을 비우는 대신 손에 쥐어지는 아파트 입주권이 자신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종이 딱지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어려운 형편에 분양금을 납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안 되기 때문이다. 장 총무는 “이런 입주권은 1천 개를 줘도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노후 건물 위험…“공무원, 마을회관에 모여 살아라”

지난해 7월에는 주민 3명이 재작년 6월 강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도시계획시설실시계획인가무효확인’ 행정소송이 승소해, 강북구청에서는 도시계획시설 사업변경인가와 관련된 결정도면을 정정 고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공원 조성은 계속 추진 중인 사업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에 불응하자 공탁으로 맞섰다.

지난해 8월 미향마을 주민들은 서울문화재단체협의회와 문화예술단체, 민노당 강북구위 등의 협조를 얻어 미향마을에 ‘춤과 노래를’이라는 행사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미향마을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물론 뜻있는 외부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미향 생태마을 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주거권 확보와 생태마을 조성이 주민들의 기본입장임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켰다. 향후 추진위는 108번지 일대가 재개발에서 제외된 경위를 비롯해, 행정소송 패소에도 불구하고 강북구청이 추진 중인 북한산도시자연공원조성계획의 절차적 결함 등 문제점을 놓고 다각적인 연구와 활동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평생을 담아온 마을

현재 미향마을은 실질적으로 장 총무를 포함해 3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1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어도 나머지는 모두 빈집일 뿐이다. 한 때 62가구가 살았지만 재개발 제외, 공원조성 강제철거 등을 겪으면서 한 두 가구씩 빠져나가다 보니 현재에 이르렀다.

40년을 미향마을에서 살아온 장 총무는 18살 때 강원도 고향에서 상경해 미향마을에 둥지를 틀게 됐다. 장 총무는 고향에 있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차비도 없이 고향 사람이 오는 길에 따라와 서울을 헤매는데 이 동네가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당연히 없었고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동대문 등 여타 빈촌(貧村)을 다 찾아봐도 이곳이 제일 지저분하고 환경이 열악했다. 환경이 안 좋으니 당연히 집값도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었다. 사글세부터 시작해 전세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집을 사게 됐다. 이후 부지도 사게 됐고 현재 보존등기도 돼 있다.

마지막 남은 판자촌 3家 “집 못 빼”
구청 공무원 “사용료 1억 내놔라!”

남편은 건설 중장비 기사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고, 휴가비도 아끼느라 5년 동안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향마을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제각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장 총무는 설명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정계순(가명) 할머니 내외. 가축들의 폐사로 형편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와 방 한 칸짜리 사글세 생활을 시작했다. 집터를 닦고, 달러 빚을 내서 조금씩 집을 지어갔다. 땅을 사지 않으면 집을 헐어버린다는 말을 듣고는 뒤늦게 어려운 형편에 허겁지겁 부지도 매입했다.

남들은 평생의 판잣집 생활을 두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5남매를 낳고 키우며 50여년을 살아온 이곳 미향마을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곳이 현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깨끗하게 변모했다. 이는 동네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미향마을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미화에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강북구 솔샘의 원천이 되는 계곡물에 악취가 뒤섞인 썩은 물이 내려와 미향마을 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향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겨울 조사에 착수해 군부대에서 오수를 여과 없이 흘려보내 발생한 사건임을 확인했다. 이에 미향마을 주민들은 바로 구청에 신고해 시정될 수 있도록 민원을 제기했다.

정 할머니는 “봄이면 계곡에 올챙이가 자글자글하다. 어려운 시절 올라와 자식 낳고 기르면서 평생을 살아온 고향과도 같은 생활 터전이다. 지금은 어떤 보상금보다 여기서 남은 생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하다”며 미향마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kimmi777188@naver.com

 
2007/06/01 [19:38] ⓒ브레이크뉴스
Posted by 희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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